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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으로 통일하다(왕건의 정치력과 고려 건국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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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의 시대, 통합의 리더십 10세기, 신라의 힘은 약해지고 지방 호족 세력이 분열을 일으키던 시기. 바로 그 혼란을 수습하고 한반도에 새로운 질서를 세운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고려의 태조, 왕건 입니다. 왕건은 무력뿐 아니라 포용과 연합, 혼인 정책과 민심 회복 전략 으로 후삼국을 통일 하고 고려를 창건했습니다. 왕건은 어떻게 통일을 이뤘는가? 왕건 정치의 핵심 – 통합과 유연성 왕건은 후손에게 불교 장려 , 절제된 통치 , 호족과 백성을 존중하는 정치 를 당부하며 물러났습니다. 고려 건국 당시의 세계 정세는? 10세기 전후, 고려가 등장하던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도 왕조 교체와 분열, 재통합 이 이뤄지던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고려는 이런 격동기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된 왕조의 기틀을 마련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교훈 분열의 시대에 필요한 건 ‘힘’보다 ‘연결’이다 교양적 메시지

유라시아의 제국을 꿈꾼 동북아 강자 (세계정세와 함께 보는 고구려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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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의 시작과 초기 확장 기원전 37년, 주몽이 졸본에서 세운 고구려는 압록강 유역을 기반으로 한사군을 압박 하며 성장합니다. 2세기경에는 이미 부여와 옥저, 동예 등 주변 소국들을 통합하며 북방의 맹주 로 떠오릅니다. [세계사 비교] 4세기 초중반 이 시기 동아시아는 북방 민족의 시대 로 전환 중이었고, 고구려는 그 흐름을 선도하고 있었습니다. 광개토대왕의 대정복 (재위: 391–413)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이룹니다. 그는 기병 중심의 군사력 , 민족 통합 전략 , 적극적인 외교·정복 정책 을 병행했습니다. 주요 정복 광개토대왕비 는 이 정복의 정당성과 위엄을 대외에 과시한 고대 동북아의 ‘프로파간다’라 할 수 있습니다. 장수왕의 남하 정책과 평양 천도 (재위: 413–491)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은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성 으로 옮기고 한강 유역까지 정복 하며 삼국 중 절대적 우위를 차지합니다. 475년, 백제 수도 한성 함락 고구려식 문화가 중부 한반도로 확산 남북방 모두를 아우르는 정치·군사 거점 확보 이 시기 고구려는 중국 북부의 혼란을 기회 로 삼아, 동북아에서 유일하게 안정된 대제국 체제 를 운영했습니다.   동시대 세계는? 이 시기 고구려는 중국 북방계 민족 왕조들(북위 등)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 의 위상을 가졌습니다. 고구려는 왜 ‘제국’이라 불리는가? 영토 규모: 한반도 북부 + 만주 전역 다민족 통합: 말갈·부여·요동계 민족 수용 자주적 외교력: 북위·백제·왜·신라와 대등한 외교 독자적 문화: 고분벽화·한자·불교·무기 체계 등 융합 ‘제국’이란 영토와 문화, 민족을 복합적으로 아우르는 체제 라는 점에서 고구려는 그 요건을 모두 갖춘 존재였습니다.   마무리: 세계 속 고구려 고구려는 4~5세기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였으며, 국제적 관점에서 ‘제국’으로 분류할 수 있는 유일한 한민족 국가 입...